아름다운 도시로 플러팅하는 영화에 화답
May 2025 l Vol. 25
응, 이거 플러팅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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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를 떠올리면 춤을 추고 싶어집니다. 로마에 가면 하루종일 맛있는 음식을 입에 달고 살 것 같고, 발리에선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 어딘가에서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상상도 해보고요.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저의 이 모든 환상과 상상은 한 편의 영화 또는 드라마를 통해 시작합니다.
어떤 도시의 분위기나 풍경,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와 텐션까지도 자연스럽게 (혹은 두드러지게) 녹아 있는 콘텐츠의 힘은 그래서 대단합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대중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이번 호 레터는 아름다운 도시로 플러팅하는 영화를 여행하듯 만나고 왔습니다. 영화 제목부터 촬영지가 예상되는 <라라랜드>와 <미드나잇 인 파리>. 여기에 어울리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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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들을 위한 라라
<라라 랜드> X 로저 구라트 코랄 로제 브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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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이태원에 위치한 카사 코로나라는 칵테일 바에서 반가운 이름의 칵테일을 발견했습니다. 라라 랜드. ‘LA의 보랏빛 선셋을 옮겨 담은, 꿈꾸는 자들을 위한 칵테일’이라는 완벽한 한줄에 일말의 고민 없이 한잔을 주문했죠(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진 메뉴라고 합니다). 보랏빛의 그라데이션을 머금은 칵테일은 정말 영화 <라라 랜드> 속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어둑해질 무렵의 선셋 아래 춤을 추던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달달한 꿈과 낭만도 맛으로 재현된 것 같았고요. 그래서인지 에디터 감자님과 ‘아름다운 도시로 플러팅 하는 영화’라는 주제를 이야기했을 때 저는 영화 <라라 랜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고요. 이번에는 보랏빛 칵테일 대신 상큼한 핑크빛이 감도는 로제 스파클링 와인으로 로저 구라트 코랄 로제 브뤼를 대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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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 랜드> 스틸컷. 춤을 추고 싶어지는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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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와 체리, 앵두, 버찌, 자두와 같은 새콤한 붉은 과실, 은은한 타닌에 까슬한 텍스쳐, 약간의 흙내음 그리고 어쩐지 장난기 넘치는 버블. 로저 구라트 코랄 로제 브뤼의 첫 인상은 이렇게 밝고 상큼하며 발랄했는데요.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리듬감 넘치는 영화의 톤앤매너에 확실하게 부응하는 와인이랄까요. 마운틴 할리우드 드라이브의 캐시스 코너, 파스텔톤 선셋 아래 탭댄스를 추던 미아와 세바스찬이 사랑에 빠질듯 말듯한 간지러운 감정선에 한껏 몰입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와인을 ‘픽’하게 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보다 상위 버전인 로저 구라트 로제 브뤼는 일전에 일본의 한 TV 쇼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돔 페리뇽 로제를 이긴 적이 있어 ‘가난한 자의 돔 페리뇽’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합니다. 이후 로저 구라트는 엄청난 유명세를 타게 됐죠. 그래서 저는 팍팍하고 고된 현실 속 할리우드 배우를 꿈꾸는 미아와 자신만의 재즈 바를 열고 싶은 세바스찬에게, 그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작은 진주와 같은 로저 구라트의 와인이 위로와 응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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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 스틸컷. 부푼 꿈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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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 랜드>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여정을 로맨틱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희망과 용기, 좌절과 무기력함이 지그재그로 오가며 말이죠. 라라 랜드(LA LA Land)는 영화의 배경지인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줄임말이기도 하지만,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상태를 뜻하는 영어의 관용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라라 랜드라는 영화의 제목은 현실과 환상 그 사이 어딘가를 떠도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행히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합니다. 꿈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여정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요. 안타깝기는 해도 살면서 자신을 열렬히 응원한 누군가가 가까운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라라 랜드>의 흥행으로 가장 축복받은 쪽은 라라 랜드인 듯 합니다. 저처럼 영화 속 두 사람이 누비고 다닌 거리와 카페, 재즈바, 천문대와 같은 명소들을 눈여겨 보며 LA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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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LA LA Land)
개봉ㅣ2016, 미국
장르 | 드라마, 뮤지컬, 멜로/로맨스
감독 | 데이미언 셰젤
출연ㅣ라이언 고슬링(세바스찬), 엠마 스톤(미아)
한줄평ㅣ현실과 낭만 속 꿈을 향해 전진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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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여니고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험주의자. 안타깝게도, 다행히도, 한두번 경험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끈기 있게 해온 것은 한 회사에서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혼술로 충전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때 직장 동료였던 감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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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미드나잇 인 파리> X 슈발리에 생 마르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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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두 번, 프랑스 파리에 갔습니다. 첫 번째는 여행으로, 두 번째는 출장이었죠. 돌이켜보면 두 번의 파리 모두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가난한 배낭여행족의 신분으로 방문했던 첫 번째 파리에선 미식 탐험은커녕 2유로짜리 바게뜨를 우적우적 씹으며 센 강변을 돌아다녔고, 두 번째 출장으로 찾은 파리에선 첫 번째보다는 여러모로 풍족했지만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대학생의 눈에도, 자유 시간 따윈 없었던 직장인의 시선에도 왠지 모를 묘한 낭만으로 다가왔던 파리라는 도시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지저분한 뒷골목, 악명 높은 소매치기, 콧대 높은 사람들 등등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면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참 이상하죠. 사람들이 왜 그리들 파리, 파리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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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스틸컷. 1920년대의 파리에서 만난, 어딘가 귀여운 살바도르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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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 역시 아마도 저처럼 그렇고 그런,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파리의 공기를 곧바로 직감한 여행자였을 것입니다. 소설가인 그는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의 파리 여행 중 혼자 밤거리를 산책하다 밤 12시에 눈앞에 나타난 클래식 카에 엉겁결에 올라타게 되는데요. 그렇게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시간을 거스른 1920년대의 파리. 그곳에서 길은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와 같은 전설적 예술가들을 만나는 꿈 같은 경험을 합니다. 은은한 가로등이 켜진 밤 거리, 삶이 예술 그 자체인 예술가들과의 조우, 술집에서 밤 늦도록 이어지는 파티. 도시의 낭만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프랑스 보르도산 ‘슈발리에 생 마르땡’을 땄습니다(실은 너무도 예견됐던 수순).
만인의 뮤즈, 아드리아나(마리옹 꼬티아르)의 등장에 가히 딱 맞는 타이밍이었습니다. 농익은 눈빛과 부드러운 말투, 적당히 톡 쏘는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대화의 스킬까지. 여자가 봐도 (겁나) 매력적인 그녀는 마치 검붉게 농익은 과실향에 톡톡 치는 탄닌과 산도, 시간이 지날수록 살살 부드럽게 풀리는 이 레드 와인과 꼭 닮은 인물이었거든요. 피카소 그리고 헤밍웨이의 연인이었던 그녀에게, 길 또한 (역시나) 관심을 갖게 되고(남자들이란. 심지어 약혼자 있음) 우연히 그녀와 함께 1900년대 파리의 르네상스 시대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영원히 남고 싶어 하는 아드리아나에게서 길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현실을 벗어난 길에게 1920년대 파리는 더할 나위 없는 황금기였지만, 정작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아드리아나는 1900년대의 파리를 너무도 동경하는 모습에, 지금 현재를 늘 못마땅해 하며 과거를 붙잡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셈이죠. 결국 아드리아나는 르네상스에 남고, 길은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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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스틸컷. 파리 황금기에 썸이라니, 이게 영화지 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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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이어 현실로 되돌아온 저 또한 현재를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사는 현재가 그래요. 모든 게 너무 빨리 움직이고 삶은 소란스럽고 복잡하죠.” 영화 속 아드리아나의 대사처럼, 어느 시대에나 현재는 늘 불만족스러운 시점으로 치부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보지 않은 시공간을 동경하며 지금 여기, 현재를 습관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요. 만약 꿈의 도시 파리에 가서 살게 된다면? 낭만은 개뿔 비싼 물가와 잦은 파업, 납득할 수 없는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인데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그렇듯 남의 떡을 더 크게 보는 법입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것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이 실체 없는 동경들이야말로 가끔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그나마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겁니다. 온 하루가 쩍쩍 갈라지듯 메마른 날이면 저는 곧잘 미드나잇 인 파리, 그 푸른빛 도시를 상상합니다. 이거 이거, 플러팅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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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개봉ㅣ2012, 미국/스페인
감독 | 우디 앨런
출연ㅣ오웬 윌슨(길), 마리옹 꼬띠아르(아드리아나), 레이첼 맥아담스(이네즈)
장르ㅣ코미디(라고는 되어 있지만 드라마가 더 적당할 듯)
한줄평ㅣ우디 앨런은 파리를 정말 정말 애정했을 거라는 확신이 서는 장면들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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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감자
2말3초를 여행매거진 에디터로 살았고, 지금은 어쩌다 IT 업계에 발 담그고 있습니다. 일단 좋아하면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반복으로 보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죠. 거북이, 돌고래, 초록 정원에 차려진 와인상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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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콘텐츠, 마신 와인, 그외 발견한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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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 그랑프리
요즘 저의 최고의 낙은 포뮬러 1(Formula 1)을 보는 것입니다. 저도 제가 이리도 스포츠에 열광하는 종류의 사람인 줄 몰랐는데, 어느새 매주 경기 스케줄을 체크하며 경기 시간이 부디 주말에, 그리고 한국 시차에 얼추 맞춰지기를 거의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시속 200-300km까지 치솟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드라이빙을 보고 있는 저의 상태를 '도파민', '순삭'이라는 표현 없이는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루마불처럼 아시아, 중동, 유럽, 미국 등 세계 곳곳을 돌며 열리는 경기를 볼 때마다 대리 여행하는 기분이 나는 것도 덤이고요. 경기 끝엔 '포디움'이라고 불리는, TOP3에 든 드라이버들이 샴페인을 따서 서로 뿌리는 자축 세리머니를 하는데, 모엣 샹동을 저렇게나 흥청망청 뿌려대는 것이 좀 맘에 걸리긴 하지만 이 또한 극강의 대리 만족이긴 합니다. 물론 저는 조만간 샴페인 한 병을 고이 모시고,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관람할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플리 들으시나요? 요즘 저의 출퇴근길 브금은 무조건 '오키오 라운지'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오키오 라운지는 사실 패션 브랜드입니다(뉴욕에서 시작한 디자이너 브랜드라네요). 오키오 브랜드 특유의 힙하면서도 자유로운 추구미가 유튜브 플리 채널로 그대로 옮겨진 셈인데, 썸네일도 선곡도 어찌나 좋은지.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신나거나 루즈해지거나 경쾌하거나 센치해지거나를 반복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 별 것 아닌 같은 것들이 하루 기분의 꽤 많은 부분을 달래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오늘 저의 테마는 꿀렁꿀렁 '귀찮은 저녁 혼자서 그루브'입니다.
지난 호 레터에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5,990원짜리 빈야드 까베르네 소비뇽을 소개한 적 있습니다. 이 와인에게 어느 정도 호감과 신뢰도를 쌓은 저는 그 사이 소비뇽 블랑과 샤도네이도 고민 없이 집에 데려왔는데요. 이번에는 다소 상승한 기대감에도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상큼하고 은은한 풀향이 도는 소비뇽 블랑은 샐러드와 오픈 샌드위치처럼 가벼운 메뉴와 함께 주스처럼 마셨고, 매끈하고 오크향이 돌며 바디감이 살짝 높은 샤도네이에는 오일리한 봉골레와 명란 파스타, 피자를 곁들였죠. 월급 들어오기 직전, 허리띠를 바짝 조여야했던 궁핍한 주간에 발견해 더욱 기뻤던 것 같고요. 굳이 만족도를 따지자면 소비뇽 블랑 > 샤도네이 > 까베르네 소비뇽 순이었는데, 아무래도 더워진 날씨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칠레 🍇 소비뇽 블랑 / 샤도네이 💰 1만원 이하
📍 타이니 레인 카페(Tiny Rain Cafe)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한 제 대답은 광화문에 위치한 타이니 레인 카페를 소개하는 일입니다. 카페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구글맵은 물론 네이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정말 코딱지만한 바(Bar)인데요(불법 영업 의심). 포시즌스 호텔에 숨어 있는 찰스 H가 꿈이라면, 호텔 뒷골목 반지하에 숨어 있는 1.5평 정도 크기의 타이니 레인 카페는 낭만입니다. 영업시간도 잘 모르겠고 메뉴판도 없는 데다 술값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저녁만 되면 참새 방앗간처럼 광화문 일대의 직장인들이 다닥다닥 모입니다(그래봐야 최대 10명?).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님 중 누구 한명은 꼭 기타를 치고 있고요. 전인권, 조용필 등 70~80년대를 휩쓴 가수들의 명곡을 다 함께 떼창하며 '위아더월드'로 가는 분위기가 마치 광화문의 르네상스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촉촉한 광화문 낭만에 옆 사람에게 위스키를 나누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아무튼 이래저래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곳입니다. 📍 (주소 검색 불가) 새문안로7길 26 이자카야 소우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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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와인 Once Upon a Wine
once_upon_a_wine@drinkingle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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