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기분 살살 달래줄 치트키 영화X와인 조합🎬🥂
Feb. 2025 l Vol. 17
기분이 꿀꿀한 오늘 같은 날엔🍾
|
|
|
기분이 좀 그런 날, 여러분은 어떻게 푸시나요? 과거 20대의 저는 무진장 술을 들이붓거나 정신 없이 매운 걸 먹거나 힘들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냅다 내달리곤 했는데요. 30대에 들어서는 그런 파괴적인 방식보다는 좀 더 점잖은 방식으로 변한 것 같아 기분을 ‘푼다’는 표현보다는 ‘달랜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feat. 20대와 확연히 다른 체력 이슈). 따끈하게 반신욕을 한다거나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한다거나, 기분이 나쁠수록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한끼를 만들어먹기도 하고요. 문제는, 예전보다 화낼 일도 맘 상할 일도, 그리고 그 화의 종류도 꽤 많고 다양해진다는 점입니다. 기분별, 상황별로 나를 달랠 적재적소의 방법이 필요해진 이유죠.
그렇지만 만능 열쇠처럼, 어떤 상황과 기분이든 나를 살살 달래는 치트키 하나쯤은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기분이 빨래처럼 축 늘어질 때도 이것 하나면 그래도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도록 하는 나만의 기분 고조 치트키요. 원스 어폰 어 와인 2월의 첫 호, 가끔(혹은 꽤 자주) 돼먹지 못한 인생에 치인 나를 어김없이 달래줄 영화와 와인 조합을 찾았습니다.
|
|
|
어차피 될대로 되는 내추럴 인생 & 와인
<아메리칸 셰프> X 쿵푸 펫낫 |
|
|
거의 매일이 버거운 직장인의 삶, 다행히 이 세상에는 꿀꿀한 저의 기분을 즉각적으로 업(UP)시키는 치트키가 몇 있습니다. 쌍꺼풀 짙은 새끼 강아지가 꼬물거리는 영상을 보거나, 반신욕을 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일, 살아 생전 절대 가지 않을 것 같은 오지를 여행(보다는 탐험에 가까운)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거나, 커피와 크림 향이 아주 절묘한 타협점을 이룬 티라미수를 먹는 일 같은.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저는 열이면 아홉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메리칸 셰프>입니다.
|
|
|
영화 <아메리칸 셰프> 스틸컷. 남 얘기라고 맘대로 지껄이는 것들에 대한 분노 |
|
|
저 말고도 분명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 많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의 이런 점을 좋아합니다. 첫째, 있는 대로 성이 잔뜩 난 주인공. 요리사인 주인공 칼이 음식 평론가의 혹평을 받고는 그에게 시원하게 욕을 퍼붓는 장면부터가, 속 시원하게 후련하니 시작이 좋습니다(일종의 카타르시스에 가깝다고 봅니다). 둘째, 언제 봐도 침 나오는 쿠바식 샌드위치. 결국 다니던 레스토랑을 때려치운 칼이 푸드트럭로 미주 곳곳을 유랑하며 바지런히 만들어 파는 그 쿠바식 샌드위치, 아는 맛이 무섭다고 볼 때마다 침 줄줄이죠. 그리고 신명 나는 라틴 배경음악. 푸드트럭이 용맹하게 도로를 달릴 때마다 쿵짝쿵짝 흘러나오는 흥겨운 남미 음악에, 기분이 얼마나 나빴든 말든 어느새 약간의 춤사위를 발동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이 시켜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할 때의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일이 흡족합니다. 이날, 다름아닌 <아메리칸 셰프>가 몹시 당겼던 것도 아마도 이 이유에서였지 싶은데요. 남이 시켜서 해야 하는 일들만 쌓여갈 뿐 그 속에 나는 어디에도 없었던 날. 나는 여기 누구, 왜, 어떻게, 왜, 정말이지 의욕 마이너스인 그런 날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 냉장고에 사둔 ‘펫낫(Pet Nat)*’을 마시며 보면 딱이겠다, 페어링 계획을 실행하기에 더없이 거지 같은 날이었죠. 펫낫은 뭐랄까요. 샴페인이나 카바(Cava)보다는 좀 더 생동감이 있으면서도, 실제로 까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예상 불가한 매력의 스파클링 와인이랄까요. 실제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조하는 샴페인이나 카바의 경우 1차 발효 후 2차로 효모를 더 넣어 한 번 더 발효를 진행하는 데 반해, 펫낫의 경우엔 발효가 진행 중인 와인을 그대로 병입하여 그 안에서 이산화탄소로 인해 자연적 기포가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소위 ‘내추럴 와인’만이 가진 자유분방한 맛과 멋이 있다는 얘기죠. 이날 마신 ‘쿵푸 펫낫’은 오렌지빛을 띤, 아르헨티나산 펫낫이었는데요. 은은한 자몽, 라즈베리향이 신선하게 맴돌면서 가볍게 뒤끝 없이, 그러나 곳곳에서 제 멋대로 통통 튀는 스파클링의 매력이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경쾌한 분위기, 그리고 결국엔 자기 맘 내키는대로 해버리고 마는 칼의 성미와도 궁합이 좋았습니다. 덩달아 저의 기분도 조금씩 튀어오르기 시작했고, 출처 모를 약간의 용기와 자존감이(취기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샘솟기도 했습니다.
|
|
|
영화 <아메리칸 셰프> 스틸컷. 주의: 빈 속으로 보지 말 것 |
|
|
영화와 펫낫을 모두 비운 지금, 여전히 저는 남의 시켜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요.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쓰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며 소위 영혼은 쏙 빼고 오늘도 용케 버텼습니다(직장인이여, 화이팅). 그래도 와인에 치즈를 곁들이며(이미 저녁은 먹었습니다만) 이 레터를 쓰는 순간만큼은 순전히 저의 것이라는 사실에 소소한 위로를 받고 있지요. 이 밤이 지나면 오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일이 또 오겠지만, 그래도 나만의 기분 고조 장치를 최대한 심어놓으면 어느 정도 괜찮을 거라 다독여봅니다. 내일 출근길을 위해 <아메리칸 셰프> OST 음악 영상과 새로운 새끼 강아지 짤도 두둑하게 저장해두었고요. 다가올 주말을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집도 몇 권 사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걸 다 잘해낼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타일러봐요. 규격화되고 안전한 퀄리티보다는 각각의 병 안에서 자연적 발효를 택한 펫낫처럼, 획일화된 메뉴의 일류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와 그곳이 푸드트럭일지언정 '진짜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칼처럼. 어차피 이렇게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 모든 것에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이죠. 어쩌면 그렇게 적당히 흘려보냄이 우리네 삶의 가장 ‘내추럴’한 방식일지 모르겠습니다.
|
|
|
아메리칸 셰프 (American Chef)
개봉ㅣ2015, 미국
감독ㅣ존 파브로
출연ㅣ본 파브로(칼), 엠제이 안소니(퍼시), 소피아 베르가라(이네즈)
한줄평ㅣ언제봐도 유쾌하고 경쾌한, 그러나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마스터피스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
쿵푸 펫낫 (Kungfu Pet Nat)
산지ㅣ아르헨티나, 멘도사
품종ㅣ피노누아, 말벡
도수ㅣ11%
특징ㅣ프레시한 자몽, 라즈베리, 곱고 섬세하며 가볍게 톡톡 터지는 기포
가격ㅣ3만원대
한줄평ㅣ뭔가 샴페인의 MZ 버전 같달까, 낮술에 제격일 오렌지빛 스파클링 와인 |
|
|
WRITTEN BY 감자
2말3초를 여행매거진 에디터로 살았고, 지금은 어쩌다 IT 업계에 발 담그고 있습니다. 일단 좋아하면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반복으로 보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죠. 거북이, 돌고래, 초록 정원에 차려진 와인상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 중입니다.
|
|
|
⚾ 야구 없는 겨울, 스토브 리그에 충성
<스토브 리그> X 이터 샤도네이 |
|
|
10,10,10,9,6,3,1,4,2,5. 이 숫자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KT 위즈팀이 KBO 리그에서 낸 성적표입니다. 저는 (아마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KT 위즈팀의 팬이 맞고요. 야구팬들이라면 대충 아시겠지만 KT 위즈팀은 창단 초기 3년을 혹독하게 보냈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거의 확정된 꼴찌팀으로 바닥을 기었고 저는 한동안 두툼한 ‘야구 잠바’를 입을 일은 없겠다는 슬픈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항상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가장 많은 팀이었는데 KT 위즈로 비교적 뒤늦게 야구에 입문한 저에게는 그래도 하루하루 새로운 기록들을 함께 쌓아가는 즐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가끔 대량 득점으로 승리하던 날, 진짜 승부는 가을부터라는 사실을 처음 체감하던 해, 정말로 눈물이 핑 돌았던 우승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고요. 그런 저에게 퇴근하고 야구를 보며 밥을 먹는 시간은 하루의 소소한 낙이자 당연한 루틴인데요, 그러니 야구 경기가 없는 (하필) 월요일 저녁은 뭘 먹어도 허기가 집니다. 그리고 아예 시즌이 끝나버린 지금, 이 겨울은 정말이지...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 요즘 뉴스를 뒤적이거나 드라마 <스토브 리그>를 돌려 보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야구팬들도 한둘은 아닐 겁니다. |
|
|
드라마 <스토브 리그> 스틸컷. 일촉즉발의 순간. 어떤 변화에든 큰 결심이 필요한 법 |
|
|
<스토브 리그>는 야구팬들이 가장 무기력함을 느끼는 시기에 방영한 SBS 드라마입니다. 2019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야구 경기가 없는 비시즌을 정조준했는데 야구팬들의 충성도가 더해지며 최고 시청률 19%대로 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3루타 정도는 가뿐히 날려버렸죠. 올해 1월부로 넷플릭스에 입장한 <스토브 리그>의 첫 겨울 성적표가 어떨지도 정말 궁금합니다. 드라마는 프로 야구팀에서 만년 꼴찌팀인 드림즈에 냉철하고 예리한 백승수 단장(남궁민)이 새로 부임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스토리인데요. 백 단장은 오자마자 드림즈가 꼴찌일 수밖에 없는 원인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내고는 이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부터 집중합니다. 가장 팬층이 두터운 스타 선수지만 인성은 ‘ㅆㄹㄱ’인 임동규 선수(조한선)를 다른팀 강두기 선수와 트레이드하는가 하면 오랫동안 조용히 비리를 저질러온 고세혁(이준혁) 스카우트 팀장을 해고하는 등 과감한 행보에 기존 운영팀 사람들의 입은 떡 벌어집니다. 하지만 백 단장은 가장 단단하게 박힌 돌을 빼내는 결정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만년 꼴찌팀을 이끈 무능한 윤성복 감독과는 3년 계약을 연장하며 오히려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고 병역 기피 논란에 미국으로 떠났지만 실력은 손색 없는 길창주 선수를 영입하는 등 예상 밖의 전략도 펼치고요. 백 단장의 모든 결정에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객관적인 데이터와 증거를 보여주며 옳은 말만 해대니 결국 모두가 수긍하고 마는데요. 이토록 흥미진진, 리얼리티로 꽉 찬 스토리에 야구팬들은 한 에피소드,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스포츠 드라마라고 하기엔 정작 야구 경기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야구팬들은 물론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열광하게 만든 건 한국 직장인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오피스 드라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압력과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리더, 해고하는 자와 당하는 자, 눈치게임이 필요한 스카우트, 살얼음판 같은 면접과 연봉 협상, 대기업의 주가 그리고 매각까지 이어지는 현실적인 스토리 속 여러 사람의 뼈를 때리는 명대사들을 곱씹어보면 생각도 많아집니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에 닥치면 써 먹어야지, 저장이 필요한 대사들은 열 손가락이 모자라고요. 그래서 저는 또 굳이 유튜브에서 명대사를 모아 4시간 분량으로 압축한 영상을 보며 캘리포니아산 이터(ITER) 샤도네이 한병을 맥주 대신 비웠습니다. 이터 샤도네이는 야구나 드라마 스토리 전개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요즘 같이 추운 겨울에도 화이트 와인이 당기는 ‘얼죽화(얼어 죽어도 화이트 와인)’가 주저 없이 선택할 만한 버터리하고 오크향이 묵직한 샤도네이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워낙 버터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와인이라 사이다 같은 청량하고 속 시원한 멘트들과 조금 부딪히는 느낌도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좋아하는 드라마를 몰아보며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고 싶었던 단순한 욕구를 해소했으니 원스 어폰 어 와인 레터를 위한 저만의 작은 상영회는 이번에도 역시 만족스럽습니다. |
|
|
드라마 <스토브 리그> 스틸컷. 선을 넘은 사람에게 예의를 지킬 필요는 없다 |
|
|
스토브 리그(Stove League)는 정규 시즌이 끝난 이후 야구팬들이 뜨거운 난로(Stove)에 삼삼오오 모여 선수나 구단의 동향 소식을 이야기하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2월, 한파가 절정인 요즘이지만 저는 슬슬 콧노래가 나옵니다. 절기 상으로 입춘이 지났으니 좋아하는 KBO 리그가 시작되는 날이 머지 않았으니까요. 프로 야구 팀들이 곪은 곳은 도려내고, 멘탈도 다듬고, 속근육을 채우며 정규 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한 야구팬은 이렇게나마 혼자 스토브 리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
|
스토브 리그 (Stove League)
개봉ㅣ2019, 한국
감독 | 정동윤, 이신화
출연ㅣ남궁민(백승수), 박은빈(이세영) 오정세(권경민), 조병규(한재희)
장르ㅣ드라마
한줄평ㅣ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미생>처럼 다가올 스포츠+오피스 드라마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SBS |
이터 샤도네이 (Iter Chardonnay)
산지ㅣ미국, 캘리포니아
품종ㅣ샤도네이
도수ㅣ13%
특징ㅣ버터버터, 오크향, 바닐라 향이 지배적인 가운데 미묘하게 달큰한 화이트 와인
가격ㅣ2만원대
한줄평 |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묵직한 샤도네이에서 확실한 가성비 라인 |
|
|
WRITTEN BY 여니고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험주의자. 안타깝게도, 다행히도, 한두번 경험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끈기 있게 해온 것은 한 회사에서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혼술로 충전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때 직장 동료였던 감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
|
|
최근 본 콘텐츠, 마신 와인, 그외 발견한 것들 |
|
|
술고래 4명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 4병을 연달아, 그러니까 각 1병씩 마신 와인입니다. 템프라니오 100%로 만든 레드 와인인데 첫 모금에서 모두가 '오?' 하고는 이후로 끝날 때까지 죽 함께 하게 됐는데요. 상큼한 라즈베리의 존재감은 적지만(저는 좋았던) 밀도 있는 블랙 베리류의 깊은 맛이 기분 좋게 넘어오고 적당한 타닌과 은은한 마른 나무향이 그야말로 호불호 없이 모두를 만족시킨 무난한 와인이었달까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굳이 마셔본 와인을 계속 선택했다는 건 저로서는 이례적입니다. 취기에 굳이 또 한 병을 집에 들고 와서는 나중에 소고기 구이와 함께 다시 먹어 봤는데, 제 기억이 틀리지는 않았더군요.
🇪🇸 스페인, 리오하 🍇 템프라니오 💲3만원대
🍷조지 미쉘 골든 마일 소비뇽 블랑(Georges Michel Golden Mile Sauvignon Blanc)
와인을 좋아해 이제는 소믈리에 경지에 이른 엄정화씨가 애정하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죠. 조(rrrr)지 미쉘 골든 마일 소비뇽 블랑입니다. 엄정화씨는 냉장고에 몇 병씩 쟁여두고 마셔도 좋은 가성비 와인으로 추천했는데요. 말보로 소비뇽 블랑 특유의 풀, 허브향이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지고 청사과와 리치, 파인애플, 오렌지 같은 상큼달큼한 과실향이 팡팡 터집니다. 은근히 솔티한 미네랄도 머금고 있고요.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미디움 바디의 소비뇽 블랑은 이리저리 굴려도 잘 어울렸고, 따끈한 물에 족욕하면서 단독으로 마셔도 훌륭했습니다. 2만원대의 가성비를 생각하면, 이거 쟁여둬야하는 와인 맞습니다.
🇳🇿 뉴질랜드, 말보로 🍇 소비뇽 블랑 💲2만원대
감자
🍺 콜센동크 아그너스 (Corsendonk Agnus)
맥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벨기에, 게다가 수도원 맥주라면 늘 환영입니다. 와인처럼, 첫 맛부터 끝 맛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공존하는 복합미, 와중에 깔끔한 피니쉬가 좋아서요(맥린이입니다만). ‘콜센동크 아그너스’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만들어졌다고 이름 붙여진 ‘트라피스트 맥주(Trappist Beers)’, 그중에서도 트리펠(Triper)이라는 맥주 스타일이라고 하는데요. 묵직한 바디에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 진한 홉 특유의 향에 쌉싸름한 허브향이 희한하게 조화를 이루는, 계속 입맛을 쩝쩝대며 병을 비웠습니다. 도수는 7.5%로 맥주 치곤 꽤 높다 생각했지만, 보통 트리펠 맥주는 8~10% 정도 된다니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고요. 덕분에 낮술로 거뜬하게(!) 맛있게 마셨습니다.
🇧🇪 벨기에 🔖 트리펠 스타일, 7.5%
기분을 운운하는 이번 레터에 이 영화를 꼭 소개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고아성 배우 주연의 <한국이 싫어서>.제목 그대로 주인공 계나(고아성)는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인데요. 매일 반복되는 지옥 같은 출퇴근길, 답 없는 회사 상사, 집안 빈부격차로 묘하게 꼬여버린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등이 엮인 여기 이곳 한국. 나 아니면 내 주변 지인이 틀림없이 겪고 있을, 하나하나 너무나 공감 가는 '헬조선' 사연들에 저는 영화 속 계나의 선택을 열렬히 응원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던가요.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삶을 틔운 계나는 한국에서 느낄 수 없던 해방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곳에선 그곳대로의 문제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합니다. 글쎄요. 정말 행복과 낙원은 이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오늘도 지옥철을 뚫고 출근하셨을 독자분들께 한풀이라도 해보고자, 이 영화를 권합니다.
📌 2024, 한국 🔖 드라마 👩🏻 고아성(계나), 주종혁(재인), 김우겸(지명)
|
|
|
원스 어폰 어 와인 Once Upon a Wine
once_upon_a_wine@drinkingletter.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