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음주조장 음악까지🎧🎶
Nov. 2024 l Vol. 11
참을 수 없는 영화, 와인,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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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힘을 새삼 곱씹어봅니다. 출퇴근길을 함께하는 메이트이자,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더욱 로맨틱하게 만드는 조력자이자,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한 번 귀에 제대로 꽂힌 멜로디와 가사는 몇 날 며칠 동안 빠져나가지 않는 강한 중독성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TMI지만, 저는 당시 머릿속에 맴도는 원더걸스의 ‘Tell Me’와 빅뱅의 ‘거짓말’ 때문에 수능 당일 언어영역 시간에 곤혹을 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수능을 볼 일도 없으니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는 나이(!)지만요. 이번 주 원스 어폰 어 와인, 영화와 와인, 그리고 음악을 더해 흥얼거렸습니다. 두 에디터의 취향 그리고 플레이리스트에도 함께 동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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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맛의 감정에 단 맛의 와인
<스타 이즈 본> X 카사솔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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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가 돌아왔습니다. 7년만에 컴백한 GD의 등장에 이 순간을 몹시 기다렸던 또래 팬으로서 ‘반갑다'는 말로는 한참이나 모자란 벅찬 감정이 든 한 주였습니다. 출퇴근길엔 귀에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POWER’를 들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위에서 그가 출연한 <유퀴즈>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죠. 그런데 벅찬 마음도 잠시, 저는 그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슬퍼졌는데요. ‘나다워서 아름다워'라는 ‘POWER’의 가사에서도, 분명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유퀴즈> 속 토크에서도.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찾아야만 했던 그의 고달픈 고뇌가 느껴졌달까요. ‘참, 스타는 어떤 면에서 못할 짓이구나.’ 그러니까 이 의식의 흐름이 이 레터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이렇게나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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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 이즈 본> 스틸컷. 음악과 사랑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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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제가 소개할 영화가 다름아닌 <스타 이즈 본>이거든요. 스타의 삶, 그 이면에 따라붙은 지독한 우울감과 고독을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수퍼스타이지만 무대 뒤에서 알콜 문제와 어릴 적 기억으로 고통 받는 잭슨(브래들리 쿠퍼)과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무명가수 앨리(레이디 가가). 우연히 만난 앨리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잭슨은 앨리에게 공연을 함께 다닐 것을 제안하고, 이후 이들은 동료이자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앨리가 점점 인기를 얻으며 둘 사이에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설렘 반 호기심 반 메이저 코드에서 시작한 영화가 미묘한 감정선을 타고 마이너 코드로 치닫는 동안 저는 조금은 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홀짝였는데요. 평소 스위트 와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이 때는 너무 드라이하지만은 않았으면 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세상 모든 게 날 못 살게 굴어도 뭐 하나만은 호락호락 순조롭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 이 영화를 보며 세미 스위트한 ‘카사솔레(Casasole)’를 을 페어링한 것은 아마도 그런 마음이었겠거니 짐작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진심으로 안쓰러워 했고 또 슬퍼졌거든요(F입니다). 저런 스타들마저 불행하다면 행복은 대체 뭘까, 꽤 철학적으로 심오해지기도 했고요. 행복해야 할 텐데 행복하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 와중에 달달한 입안의 와인. 그렇게 적당히 쓴 맛과 단 맛을 오간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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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 이즈 본> 스틸컷. 언뜻언뜻 비치는 소확행이야말로 답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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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여운이 지금까지도 은은하게 유지되어 온 데는 아마도, 7할 정도는 OST의 공일 거예요. 저는 지금 <스타 이즈 본>의 OST 중 하나인 ‘Shallow’를 들으며 이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레이디 가가는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뭘까요? 글쎄요, 그렇게 유명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마저 저마다 괴로워하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하구나 싶은 동질감이 들면서도,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묘연합니다. 다만 한 가지의 확신에 가까운 건 어떤 상황이든, 내가 내가 아닐 때 우리는 불행해지기 쉽다는 것이죠. 무대 위와 뒤의 내가 너무도 다를 때, 회사에서 가면 쓰듯 생활하는 내가 문득 생소하게 느껴질 때처럼요.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나는 오늘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답게 살겠노라, 다짐해봅니다. 나다워서 아름다운 밤입니다. 마시다 남은 카사솔레 1/3병도 냉장고에 아직 남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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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개봉ㅣ2018, 미국
감독 | 브래들리 쿠퍼
출연ㅣ브래들리 쿠퍼(잭슨), 레이디 가가(앨리)
장르ㅣ드라마
한줄평ㅣ'감독' 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배우' 레이디 가가의 발견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
카사솔레 (Casasole)
산지ㅣ이탈리아, 오르비에토
품종ㅣ프로카니코, 그레게토
도수ㅣ10%
특징ㅣ과하지 않은 세미 스위트, 중간 바디, 배, 꿀, 꽃, 멜론
가격ㅣ2만원대
한줄평 | 기분이 씁쓸한 날 생각날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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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감자
2말3초를 여행매거진 에디터로 살았고, 지금은 어쩌다 IT 업계에 발 담그고 있습니다. 일단 좋아하면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반복으로 보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죠. 거북이, 돌고래, 초록 정원에 차려진 와인상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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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를 마시며 보내는 가을
<본 투 비 블루> X 섹슈얼 초콜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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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술, 담배 그리고 나쁜 남자.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건 나쁜 남자입니다. 나쁜 남자에게 한 번 빠져들면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 없고, 치료에 약도 없거든요.
온갖 종류의 나쁜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겠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트럼펫 하나로 수많은 여심을 흔들었던 20세기 미국 대표 나쁜 남자, 쳇 베이커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그는 복잡한 여자관계에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마약에도 자주 손을 대며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던 진짜 나쁜 남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외모에 신비로운 눈빛, 끝장나는 트럼펫 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뮤지션입니다. 게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는 또 어떻고요. 그런 그의 음악은 어딘가 어둡고 구슬프면서도 절제된 호흡에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 묘하게 섹시하고 중독적이죠. 그래서 가을에 시작해 겨울까지 죽 생각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가 요즘 자꾸만 당긴 이유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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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컷. 빠져든다, 빠져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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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쳇 베이커를 담은 영화에 망설임 없이 '섹슈얼 초콜릿(Sexual Chocolate)'을 가져왔습니다. 섹시한 트럼펫 연주와 조용히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쳇 베이커의 변태스럽고 불안정한 심리가 더해져 몽환적인 영화의 핏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섹슈얼 초콜릿이 떠올랐거든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저의 와인 지론에 따른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섹시한 남자의 표본인 에단 호크를 고려하기도 했지만요. 섹슈얼 초콜릿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시라와 진판델을 블렌딩한 아주 힘찬 풀바디 레드 와인입니다. 전반적으로 진득한 블랙 베리향에 스파이시, 후추, 가죽, 담뱃잎, 감초 등이 강하고 뾰족한데 그 안에 매혹적인 초콜릿향과 오크, 바닐라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맵‧단‧짠맛'으로 똘똘 뭉친, 꾸덕하고 맛있게 자극적인 떡볶이 같은 와인이랄까요. 쳇 베이커의 음악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어 매력적이고 중독적일 수밖에 없는 맛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본 투 비 블루>에 섹슈얼 초콜릿은 끊었던 담배를 생각나게 하고 잠자고 있던 성욕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자극에 자극을 더하는 페어링이었습니다. 실제로 섹슈얼 초콜릿을 만든 와인 메이커도 이 와인이 인간의 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리라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이 와인은 수요일 저녁 피자와 어울리며(사실입니다), 오픈 즉시 여자들과 함께 마시길 추천합니다(그럴 듯합니다)’라고 라벨에 대놓고 적어둔 걸 보면요. 만약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섹슈얼 초콜릿을 '박스 떼기' 해둘 일이고, 여자라면 그런 남자는 조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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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컷. 사랑은 와인 같아요. 너무 신기하고 강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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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주 휘청이는 자신의 손을 잡아주며 응원하는 여자친구 제인에게 크게 의지하면서도 여자친구의 삶은 응원해주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나쁜 남자 쳇 베이커로부터 벗어나길 결심한 제인을 보며 안도합니다. 정작 저는 영화를 다 보고도 며칠 동안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와 ‘I fall in love too easily’를 무한 반복 틀어놓고 갈팡질팡, 글루미한 쳇 베이커 무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요. 확실히 그의 음악은 이렇게나 중독적이지만,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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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개봉ㅣ2016, 미국, 캐나다, 영국
감독ㅣ로버트 뷔드로
출연ㅣ에단 호크(쳇 베이커), 카르멘 에조고(제인/일레인), 칼럼 키스레니(딕)
한줄평ㅣ이 영화 한 편에 와인 한 병이면 그곳이 바로 재즈바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
섹슈얼 초콜릿 2020 (Sexual Chocolate Red)
산지ㅣ미국, 캘리포니아
품종ㅣ시라, 진판델
도수ㅣ14.5%
특징ㅣ초콜릿, 오크, 바닐라, 스파이시, 후추, 가죽, 감초, 블랙베리, 체리, 무화과 등 복잡하고 다양한 맛
가격ㅣ4-5만원대
한줄평ㅣ입에 착착 달라붙는 자극의 끝판왕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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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여니고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험주의자. 안타깝게도, 다행히도, 한두번 경험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끈기 있게 해온 것은 한 회사에서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혼술로 충전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때 직장 동료였던 감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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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콘텐츠, 마신 와인, 그외 발견한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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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보 뀌베 디 브뤼(Champagne - Devaux Cuvee D Brut)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샴페인을 마시는 날은 극히 드뭅니다. 샴페인은 (제 기준) 너무 비싸거든요. 몇 년 전 30만원대에 달하는 샴페인의 대명사 돔페리뇽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셔본 이후 샴페인은 포기한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보 뀌베 디 브뤼라면 샴페인도 문을 두드려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4-5만원대의 착한(?) 가격이 첫 번째 이유고요. 고소한 빵 냄새와 숙성된 과일향이 지배적인데 그 사이사이로 구수한 누룩, 향긋한 사과, 상큼한 시트러스가 스쳐지나가는 것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쫀득한 치즈, 과일과 함께 하니 마치 빵 위에 치즈를 올려 꼭꼭 씹어 먹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재밌는 페어링을 자랑했습니다. 다음에는 버터로 살짝 볶은 해산물과 함께 마셔도 좋겠고, 연말 홈파티에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큰일입니다. 저, 이러다 샴페인에 빠지면 어떡하죠?
🇫🇷 프랑스, 상파뉴 🍇 피노 누아, 샤도네이 💲5만원대
🥂 이터 샤도네이(Iter Chardonnay)
쨍한 산미의 역할은 줄이고 버터리하며 오크향이 묵직한 캘리포니아 샤도네이의 특징을 잘 담아낸 와인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만한 와인이지만요. 이런 스타일의 캘리포니아 샤도네이는 구운 삼겹살이나 중식, 후라이드 치킨, 방어회와 같은 기름진 음식과 아주 훌륭한 궁합이라 평소에 쟁여두고 있으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습니다. 물론 꼬린내가 나는 치즈와도 완벽하고요. 비슷한 스펙의 상위 버전으로는 브레드 앤 버터(3만원대), 하위 버전으로는 롱반 샤도네이(1만원대)가 떠오릅니다.
🇺🇸 미국, 캘리포니아 🍇 샤도네이 💲2만원대
감자
📖 찬란한 멸종
지구가 심상치 않습니다. 11월에 반팔 차림이 가능한 서울, 그리고 저 멀리 스페인에서는 난데없는 물 폭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정말 지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에 여기저기 자연과학서를 들춰보기 시작한 저란 문과인. 뼛속 문과인 저도 마치 어린이 그림책처럼 읽기 쉬운 책을 하나 찾았으니, <찬란한 멸종>입니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제가 몹시도 궁금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마냥 심오하고 심각한 대신 친절하고도 유쾌하게 인류와 생태계 역사 전반을 훑으며 생각할 거리를 짚어주는 방식에 지금 우리가 봉착한 이 위기를, 호들갑보다는 최대한 이성으로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우리의 지구,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갑자기 비장) 위기감은 들지만 과학은 영 어렵게 느껴졌던 지구인에게 추천합니다.
👦🏻 이정모
평소 여행 유튜브를 그리 즐겨보지는 않는 제가 요즘 영상 업로드 알림을 기다리는 채널이 생겼습니다. 대기업 퇴사 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2말 혹은 3초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여행 이야기를 담은 ‘마인드씨피알’이라는 채널인데요. 사실 퇴사와 여행, 이젠 식상할 대로 식상한 주제이긴 한데 이걸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저 포함 많은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하는데) 브라질 여사친과의 ‘썸’ 때문입니다(여자가 봐도 예쁩니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친구인 듯 연인인 듯 밀고 당기는 그들의 에피소드에 ‘이럴 거면 제발 사귀어라’는 마음으로 언제 사귀나, 계속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결국 이들은 연인이 (아주 최근에) 되었고 함께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게 됐으니 썸은 끝났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한창 달달무리한 신생 커플의 단계가 또 그것대로 볼 만한 걸 보니 저, 좀 많이 고팠나봐요? 여러모로 단 게 당기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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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와인 Once Upon a Wine
once_upon_a_wine@drinkingle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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